호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친절한 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지속적으로 제공된 호의를 받은 사람들이 그 호의를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호의가 상식이라면 그걸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몰상식한 사람들인가? 오늘 이상한 뉴스가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빵집의 호의
어느 빵집에서 있었던 이상한 사건이 뉴스를 탔다. 그 개요는 이렇다. 한 손님이 빵집에 와서 빵을 구입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계산을 하고 빵집을 나갔다. 잠시 후 그 손님이 다시 빵집에 들어와서 시식용 빵이 있느냐고 물었다. 점원은 당연히 있다고 하면서 시식용 빵을 가져왔다. 문제의 그 손님은 시식용 빵을 먹어 보더니 자기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라며 조금 포장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점원은 당연히 시식용 빵은 포장해서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점원을 향해서 사장도 아니니 조금 포장해 준다고 하더라도 사장이 모를 것이라며 계속 요구했고 점원은 끝내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손님은 시식용 빵을 가져가지도 못했고 구겨진 자신의 이미지만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이 손님의 문제점
첫째, 이 손님은 어차피 시식용으로 제공된 빵이니 집에서 먹으나 매장에서 먹으나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런데 시식용 빵은 엄연히 매장 안에서만 제공되도록 규정이 되어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점원은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제공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라면 다른 빵을 구입하지 말고 그 시식용 빵을 구입했으면 될 일이었다. 기껏 다른 빵을 구입한 이후에 자신의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라며 굳이 시식용 빵을 포장해 달라고 할 이유가 무엇인가? 시식용 빵을 맛본 이후에 이미 구입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라면 교환을 하든지 아니면 추가로 구입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세 번째, 판매원이 사장이 아니라면 대부분 아르바이트일 듯하다. 만약 그 시식용 빵을 포장해 주었더라면 그 아르바이트는 규정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자칫 어렵게 구한 알바 자리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인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
시식용 빵을 제공한다는 것은 맛을 보고 취향에 맞으면 구입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많은 곳에서 시식용 음식을 제공해 왔다. 이것은 하나라도 더 판매하려는 마케팅 수단의 일환인 것이다. 그 마케팅 수단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당연히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 마케팅 수단을 매우 잘 활용(?)하여 역으로 이용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시식용 빵을 포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심한 무리수이다. 그래서 그 사건이 뉴스 매체를 통해서 보도된 것일 수 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월요일 아침에 매우 상식을 벗어난 신선한(?) 뉴스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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