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외 시사

남파 간첩이 일으킨 폭동

by upright-life 2021. 11. 24. 11:56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오랜만에 망언이 등장했다. 전두환 씨의 빈소를 방문한 한 퇴역 장성이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남파된 간첩 300명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간첩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어떻게 진압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궤변을 던졌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상반된 시각

일반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군부 독재 시대가 연장되는 것을 반대했던 대규모 시위였다. 그리고 그 시위를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잔인하게 진압하였고 그 와중에 수 백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한 사건을 지칭한다. 그런데 진압군을 지휘했던 신군부 측의 시각은 너무도 다르다. 그 당시 신군부와 그 신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광주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남파된 300여 명의 간첩들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19805월 광주에 많은 남파 간첩들이 모여서 혼란한 정국을 틈타서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시도가 민주화 운동으로 호도되었다고 주장한다.

 

무력진압

 

간첩설에 대한 반박 1

간첩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첫 번째 반박은 이렇다. 당시 신군부의 가장 강력한 실세는 전두환이었다. 그 당시 전두환의 계급은 소장이었고 직책은 보안사령관 및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다. 보안사령관은 말 그대로 각종 기밀 정보들을 수집하고 취합하는 기능을 하는 보안사령부의 최고 수장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각종 동향에 대한 정보 및 첩보를 수집하고 취합하는 곳이다. 그런데 간첩 300여 명이 일순간에 광주에 모여서 폭동을 일으킬 때까지 그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폭동이 일어난 이후에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진압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는 간첩들이 그렇게 집결해서 정부 전복을 시도하는 동안 무슨 정보 및 첩보를 수집하고 있었던 것인가?

 

 

 

간첩설에 대한 반박 2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간첩들에 의해서 촉발된 폭동이라는 주장에 대한 두 번째 반박은 이렇다. 백번 양보해서 간첩들이 주도한 폭동이고 신군부는 간첩들의 폭동을 진압한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모두 광주 시민밖에 없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공수부대가 그렇게 많이 투입되고 심지어 헬리콥터와 전차까지 동원이 되었는데 간첩 300명 가운데 몇 명을 사살한 것인가? 안타깝게도 보도된 바에 의하면 사망자와 부상자들 가운데 간첩으로 생각이 될 만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망자와 부상자는 광주 시민인 것이다. 1980년 신군부와 추종자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는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더불어 41년이 지난 2021, 아직도 유가족들은 가슴에 씻기지 않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분들의 가슴에 두 번째 대못을 박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매우 파렴치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19805월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여전히 피해자는 피해를 당하고 있고 가해자는 가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