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렸을 때 악(惡)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그 악이라는 것은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악의 개념(槪念)을 상대화시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불합리한 노력의 결과가 모순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곧 악의 상대화로 인한 모순이 나타났으며 그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은 악의 상대화가 불러온 비극을 생각해 본다.
악(惡)의 개념
‘악’을 사전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 인간이 설정해 놓은 도덕적 기준을 상당히 침해할 정도로 행위. 2. 보편적 양심에 위배되는 행위와 사회가 암묵적으로 약속한 바름을 위반하는 행위. 이것을 보면 누군가 악한지 아닌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이 법적인 개념으로 접근되면 보다 더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위에서 기술한 도덕적 기준이나 혹은 사회적 올바름은 모두 각종 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을 어기는 것은 악한 것이고 반대로 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악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것이 악의 개념을 사전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잘 규정한 것이 된다.
개념의 상대화
그러한 악의 개념을 악의 절대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악한 인간이 그 악의 개념을 상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악의 기준이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내가 설정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되면 악이 아니고 부합되지 않으면 아무리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그것은 악이 되는 것이다. 또한 악을 크기로 구분하여 큰 악은 악이고 작은 악은 악이 아니라고 묘하게 혼동시키기도 한다. 잘못된 말이다. 크건 작건 악은 그저 악인 것이다. 매우 심각한 것은 행위자가 돈이 많으면 그 행위가 악이 아니고 돈이 없으면 행위뿐만 아니라 행위자 자체도 악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험악한 말까지 나오기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정치권에서는 이런 말도 나오기도 한다. 유검무죄(有檢無罪) 무검유죄(無檢有罪). 검사를 알거나 검사 자신의 문제라면 무죄이고 검사를 모르면 유죄라는 것이다. 이 모든 표현이나 현상이 모두 악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심각한 결과
악을 상대화시키면 이익을 보거나 혹은 유리한 개인이나 집단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매우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결코 그들도 이익을 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을 상대화시키는 순간 사회 자체가 악하게 변하게 되고 그 악을 바로 잡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잃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피해가 악을 상대화시킨 주체들까지, 즉 이익을 본 사람들이나 단체들에게까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악은 절대로 상대화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악을 상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악의 근원이 정의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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