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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시사

측천무후의 비뚤어진 권력욕

by upright-life 2024. 11. 8. 16:04

 

중국에는 3대 악녀가 있다고 한다.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전한의 여태후와 당나라의 측천무후 그리고 청나라의 서태후이다. 그 가운데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황제까지 오른 사람이다. 측천무후가 황제가 되기까지 그녀의 비뚤어진 권력욕이 크게 작용했으며 황제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악행을 저질렀다. 후대에 측천무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진 권력욕에 의한 악행은 다르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무조에서 재인으로

측천무후는 서기 624년에 태어나 705년에 사망했다. 그 옛날에 무려 81살을 살다 간 사람이다. 측천무후의 이름은 무조(武照)이며 아버지 무사확은 사업을 하여 크게 돈을 번 사람이었다. 무조는 어려서부터 용모가 탁월하여 12살에 입궁하여 궁녀 생활을 시작하였고 급기야 후궁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출신이 비천하여 정 5품에 해당하는 재인(才人)에 봉하여졌다. 재인 무씨는 후궁시절 다른 후궁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출신이 비천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황제인 이세민이 죽자 후사가 없는 후궁들은 비구니가 되어야 한다는 궁궐의 법도에 따라 감업사(感業寺)에 들어가 비구니 생활을 해야만 했다.

 

고화 궁궐 왕관

 

비구니에서 황제로

그렇게 비구니 생활을 하던 측천무후에게 뜻하지 않은 상황이 찾아왔다. 선황제이던 이세민이 병석에 있을 때 측천무후는 그 옆에서 열심히 병간호를 했다. 그것을 본 이세민의 아들 이치가 그녀를 눈여겨본 것이다. 황제가 된 이치가 마침 감업사에 갔다가 비구니 생활을 하는 측천무후를 보았고 이치의 뜻에 의해서 측천무후는 다시 입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권력욕이 되살아나 황제 이치의 후궁이 되고 급기야 황제의 애첩인 후궁을 폐위시켜 퇴출시켰다. 그 이후 측천무후는 자신의 갓난 딸을 스스로 죽여놓고 황후가 죽였다고 누명을 씌워 퇴출시켰다. 결국 측천무후는 황제 이치에 의해 황후가 되었다. 측천무후의 권력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두 아들을 황제에 올려놓고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 폐위시키고 급기야 자신이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황제가 된 것이다.

 

 

비뚤어진 권력욕의 과정

측천무후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과 딸을 죽게 했으며 자신의 친정 사촌들도 누명을 씌워 거침없이 제거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혹은 자신이 지향하는 명예를 쟁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 권력을 손에 쥐어야만 했으며 실제로 권력으로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상식 이하의 생각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혹자는 측천무후가 백성들을 훌륭히 보살핀 군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기에는 드러난 그녀의 악행이 너무도 큰 것이다. 마음이 흉폭한 자가 권력을 가지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그릇이 안 되는 자가 분수에 넘는 권력을 가져도 모두에게 불행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너무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의 측천무후도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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